마을정보

[안양] 기산마을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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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반현황

■ 장흥읍에서 동으로 약 4km, 안양면소재지에서 서북으로 4km지점에 위치한 해발 약 80m의 중산간마을임
■ 주산인 사자산 낙맥이 내려와 마을 뒤에서 가마등을 이루고 가마등에서 좌우로 청룡·백호등이 마을을 감싸고 있어 풍수지리설로 금국토체(金局土體)형국이라 하며, 주나라 문왕이 도읍하였던 기산과 지형이 흡사하다 하여 기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함
■ 개촌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마을 앞, 뒤 등에 지석묘가 분포되어 있고 우물이 발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됨
■ 기록상으로는 고려말 (1373년경) 부안임씨가 입주하여 광산김씨, 수원백씨, 광산노씨 등으로 성촌이 이어진 것으로 전해짐
■ 조선조 중엽 (1500년대) 관서별곡의 작자 기봉 백광홍이 조선 팔문장에 듦으로 해서 시대에 봉명재에서 기봉 백광홍과 동문수학하여 남계 김윤, 옥봉 백광훈 등 기산 팔현이 배출됨으로 양택지로서의 최고라 해서명 기산팔문장마을 장흥의 제일 기산으로 일컬어짐
■ 마을 앞으로는 국도 18호선이 통과하여 수문-대덕방면으로 차량의 왕래가 빈번하므로 교통이 좋으며 토질이 비옥하여 농사에 적지임
■ 마을 뒷골에 봉명재라는 서재가 있어 각 처에서 수강생이 모여들어 강학을 하였으며 이 서재에서 수학한 사람 가운데서 이름있는 석학거유가 많이 배출됨
■ 돌담, 흙담, 지하 바위틈에서 솟는 샘물 등 한가로운 시골마을로 조선시대 뛰어난 문장가 8명을 배출한 마을임
 

문화자원현황

분류

주제

자원현황

문화

영화, 영상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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축제, 행사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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예술(음악, 문학, 미술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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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임

마을개발위원회, 부녀회

종교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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장소

1970년대 새마을사업으로 지붕개량을 하면서 기와집이 많아짐

풍경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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돌담, 흙담으로 이루어진 마을 길

이색공간

기산재(광산김씨 제각), 추후재(남평문씨 제각), 추원재(장흥위씨 제각), 반송재(수원백씨 제각)

기관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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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활

건강, 의료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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교육

안양초등학교

교통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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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장, 상권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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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물

주민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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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명인, 연구자, 학자

백영홍(의학박사), 임정모(순천공전 수학과 교수)

예술가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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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타 인적자원

백기주, 백승기(면장역임), 신동호, 백남호(초등학교장 역임), 백질근(서울은행 지점장), 백귀근(체신청사무관), 백천근(육군 중령)

역사

역사·문화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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변화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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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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